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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120주년 특집]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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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24.06.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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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항에서 그리는 ‘한국인 최초 재림교인’ 이응현과 손흥조의 발자취
1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고베항은 오히려 한적하고 여유롭다. 가만히 서서 이응현과 손흥조가 쿠니야 전도사에게 성경을 배우던 당시의 모습은 어땠을지 상상한다.

1904년 5월, 하와이 노동이민길에 올랐던 감리교인 이응현과 장로교인 손흥조는 일본 고베에 머무는 동안 쿠니야 히데 전도사를 만나 재림기별을 접한다. 


그리고 6월 12일 새벽. 롯코산 언덕 누노비키폭포에서 침례를 받고 최초의 한국인 재림교인이 된다. 


<재림신문>은 120년 전, 그날 그곳 ‘역사의 현장’을 찾아 신앙의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섭리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그 길을. - 편집자 주 - 


후두둑 후두둑. 

새벽부터 빗소리가 창틈 사이를 비집고 들려왔다. 잠결에도 ‘이른 장마가 시작된 걸까? 비가 이렇게 오면 그 먼 곳까지 어떻게 다녀오지?’라는 걱정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했다. 심란함을 추슬러보려 동이 트기도 전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적잖은 빗줄기에 바람까지 불어 약간 쌀쌀하게 느껴지는 으스스한 날씨였다. 도쿄역에서 신칸센 열차에 올라 오사카로 향한다. 누노비키폭포로 가는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맙게도 남형우 목사(동경한인교회 담임)가 애써 시간을 내 동행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이동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고야를 지나면서부터 구름이 서서히 걷혔다. 오사카에 도착하자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이 맑게 개었다. 감사한 일이다.

 

역에는 류종현 목사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인 집회소인 오사카센터교회 담임목사로 봉사하는 그는 서일본합회 목회부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국의 삼육대에서 영문학과 신학을 복수전공하고, 삼육대 신학대학원 2학기 과정을 마친 후 1998년부터 2년 동안 일본삼육대로 유학하면서 '일본에 복음의 빚을 갚겠다'는 심정으로 현지 목회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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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목사는 2001년 일본연합회에 공식 채용돼 사역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현지 기관에 목회자로 부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오사카센터교회의 인턴과 부목사를 거쳐 가고시마, 요나고, 히로시마삼육학교에서 시무했으며, 2016년부터 지금까지 오사카센터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사이, 미국 앤드류스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오며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부지런한 주의 종이다. 


그의 안내로 서일본합회를 방문했다. 오사카센터교회가 합회 건물에 들어서 있다. 1층에는 영어학원이 있고, 2층부터 4층까지는 오사카센터교회가, 4층부터 8층까지는 서일본합회가 사용한다. 합회는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교토부, 효고현, 시가현, 나라현 등 일본 서부 지역의 선교를 관할한다. 


합회 직원들을 만나 올해가 한국선교 120년을 맞은 뜻깊은 해이고, 그 시작이 당시 고베교회 전도사였던 쿠니야 히데 목사의 전도로 인한 것이었음을 설명하자 놀라기도 하고, 반가워하기도 하면서 지극히 환영했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리액션’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며 한동안 발길이 머물렀다. 


오사카센터교회는 매우 아름다웠다. 샹들리에를 닮은 전등과 단상 전면을 장식한 오르간의 은빛 파이프가 분위기를 차분하게 잡아주었다. 어디선가 성스러운 찬양의 울림이 들려올 듯한 공간이었다. 아기자기한 구조와 실용적인 배치가 곳곳에 스며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접근성도 좋아보였다. 한인 목회자가 사역하는 교회에 부흥의 축복이 임하길 조용히 묵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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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차를 몰아 고베로 향했다.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그날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의 본격적인 출발이다. 120년 전, 이즈음 어느 날 바로 이곳에서 재림기별을 받아들였던 신앙의 선조들이 밟은 길을 되돌아보는 여정이다. 그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한반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조명하려는 취지다.


약 1시간을 달려 고베항에 다다랐다. 1904년 5월, 하와이 노동이민길에 올랐던 이응현(李應顯)과 손흥조(孫興祚)는 이곳에 머물며 수속을 밟는다. 고베는 하와이행 이민선의 중간 기착지였다. 


평안남도 양덕군 출신의 이응현은 37세의 젊은 가장이었다. 원산에 있는 하와이 이민회사의 주선으로 4명의 가족을 이끌고 고베에 머물던 중이었다. 신체검사 등 수속을 마치고, 떠날 날을 기다리던 그는 소일 삼아 시내 거리를 한가로이 거닐었다. 


그러다 유난히 긴 이름의 교회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약 1m 길이의 간판에는 ‘제칠일 재강림교파의 고베교회’(第七日 再降臨敎派之 神戶敎會)라고 씌어있었다. 당시 감리교인이었던 그는 낯설고 특이한 명칭에 고개를 갸웃하며 몇 번이나 문 앞을 서성였다. 교회 간판을 유심히 바라보는 이방인을 본 쿠니야 히데 전도사는 즉시 밖으로 나가 그를 정중히 안으로 안내했다. 이응현의 첫인상은 보통 키의 단아한 모습이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한문(漢文)으로 필담을 주고받았다. 이처럼 긴 교회의 명칭에 담긴 ‘제칠일 안식일’과 ‘예수 재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조선인이 처음으로 재림기별을 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응현은 그 자리에서 수년 동안 자신의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경험해보지 못했고, 깨닫지 못한 새로운 복음에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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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현은 이튿날부터 계속 쿠니야 전도사를 찾아가 재림교회 교리를 배웠다. 진리를 확신한 그는 급기야 하와이 이민을 중단하기로 결심한다. 뒤늦게 깨달은 진리를 희망없이 살아가는 고국의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강렬한 사명감이 들어서다. 그러나 이민 인솔자의 반대로 한국으로 되돌아가 전도에 매진하겠다는 바람은 이룰 수 없었다.


되새겨보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말과 글을 쓰는데도 좀처럼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필담으로 진리를 확신시키고 이해하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조선인 노동자의 구원에 대한 갈망이 작용했던 것일까. 기별을 전해야 한다는 일본인 목회자의 강렬한 열망이 통했던 것일까. 아무리 곱씹어봐도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만 뇌리에 머문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뜻을 접고 예정대로 하와이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그가 갑자기 눈병에 걸려 고베에 더 머물게 된 것이다. 전염성 안질로 5월 19일 출항하는 이민선 캡틱(Captic)호에 오르지 못한 그는 치료를 위해 20여 일을 더 체류하게 된다. 이때를 이용해 날마다 쿠니야 전도사와 고베요양원장 록우드(S. A. Lockwood) 박사에게 성경을 배웠다. 


당시 고베에는 1903년 일본 최초의 재림교회 의료기관으로 설립된 고베위생원(Kobe Sanitarium, 神戶 衛生院)과 1899년 일본 최초의 재림교회로 설립된 영어성경학원인 시바 와에이 세이소각코(Shiva Japanese-English Bible School, 芝和英聖書學校) 등 재림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이 있었다. 1904년 1월 문을 연 고베교회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조직된 교회였다.


고베는 메이지 시대 개항 때부터 정식 국제무역항이었던 까닭에 일찍이 항구도시로 발전했다. 무역상, 외교관,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빈번하게 찾아들었다. 지금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900년대 초반 이곳에 살던 서구 외인들의 주택이 전시돼 있다. ‘기타노이진칸’이라 부르는 이 거류지는 오늘날 지역 발전을 이루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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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현장을 찾았던 날. 고베항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선착장 주변에는 베이크루즈 등 호화로운 유람선이 서 있고, 대형 쇼핑몰이 손님을 맞이했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 아장아장 걷는 아가와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는 젊은 부부, 그 뒤로 낚싯대를 든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는 아빠의 모습이 겹쳐 지났다. 중심부에 자리 잡은 포트타워는 이곳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멀리 보이는 대관람차와 어우러져 빚어내는 야경은 이 지역 대표 명소이기도 하다.


항구 안에는 ‘지진 메모리얼 파크’가 있다.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파손된 시설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당시의 교훈과 복구 노력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메리켄 파크 안벽 일대 약 60m 길이를 기억 공간으로 남겨뒀다. 이제는 세월의 흐름으로 깨진 아스팔트를 이끼와 따개비가 뒤덮고 기울어진 가로등은 녹슬었지만, 그때의 충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근처의 전시실에는 기록 사진과 모형 등 피해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가 있다. 재림을 앞두고 늘어날 재난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다.


아쉽게도 고베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항구의 모습이 아니었다. 대형 호텔 건물이 항구를 겸하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에 올라 항만시설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 고즈넉이 정박해있는 페리 한 척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닷바람이 따사로운 햇살을 타고 파도처럼 피부에 와 부딪혔다 사라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이즈음 풍경은 어땠을까 상상했다. 


물론 그때의 상황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하와이행 이민선을 탔으니 어쩌면 지금보다 더 크고 번잡했을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사람으로 붐볐을까. 파란눈의 외국인, 하얀옷의 조선인, 바쁜 일손의 일본인이 뒤섞였을 것이다. 그 북적이는 발걸음 속에 누군가는 청운의 꿈을 품고 설레했을 테고, 누군가는 자신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고민하며 불안해했을지 모른다.


* 이 기사는 참교육을 회복시키는 건강한 대학 삼육보건대학교 지원으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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